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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프랑스 정치제도 비교

by mynote7713 2025. 4. 22.

19세기는 유럽이 정치적으로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다른 정치 체제를 경험하며 유럽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글에서는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 제도를 살펴보며 이 정치 제도의 변화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뤄졌는지 보겠습니다.

19세기 영국(좌)과 프랑스(우) 정치체제의 변화를 대비해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입헌군주제의 발전 19세기 영국 정치 제도의 핵심

17세기에 명예혁명을 거친 뒤 19세기에 들어섰을 때 영국은 이미 왕권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한 입헌군주제의 틀을 마련한 상태였습니다. 국왕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았으며 헌법 중심의 정치 체제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의회와 총리에게 집중됐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1832년의 1차 선거법 개정은 선거권을 확장하는 계기였으며 이후에 추가적인 개혁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등장하게 된 신흥 중산층이 자신들의 정치 참여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점점 크게 냈기 때문입니다. 정치 권력에 있어서는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가 서로를 견제하며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원은 선거를 통해 구성됐고 상원은 귀족, 주교, 고위 성직자 등 상류 계층 중심으로 구성되어 전자가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는 창구가 됐다면 후자는 보수적 견제 세력의 역할을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상원의 영향력이 컸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가면서 선거법 개정을 통해 하원의 대표성이 커졌고, 1911년의 의회법이 상원의 입법 거부권을 제한하면서 하원의 우위가 확고해졌습니다. 하원이 선거로 선출됐기 때문에 여기에서 정당 간의 정책 경쟁과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하원의 우위가 확고해지면서 정당 중심의 정치 운영도 영국 정치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혁명과 반혁명의 반복 - 프랑스 정치의 격동기

프랑스는 1789년에 대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공화정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공화정 체제는 얼마 못 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종식됐습니다. 1804년에 나폴레옹은 제 1제국을 수립하며 독재적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독재 정권으로 복귀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폴레옹 법전 제정과 행정 개혁 단행으로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의 정권 역시 다시 무너지고 루이 18세를 중심으로 부르봉 왕정 복고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숨돌릴 틈 없이 18307월 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조가 몰락하고 루이 필리프의 입헌군주제가 수립됐습니다. 이런 격변은 그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1852년에 다시 제 2제국으로, 1870년에 또 다시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매우 복잡하고 격동적인 정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19세기 내내 프랑스는 끊임없이 공화정과 제국, 입헌군주제를 오가며 다양한 정치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 체제의 이런 불안정성은 당연히 사회적 혼란과 긴장을 고조시켰으며 국민들의 정치적 불신과 피로감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시민들은 점차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했고 보통선거권 역시 차츰 도입되어 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을 하나 하나 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수립됐던 제3공화정은 비교적 안정적 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후로 프랑스는 공화주의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프랑스의 정치는 매우 격동적이었습니다.

정치 안정성의 차이

영국과 프랑스의 19세기 정치 제도 변화의 흐름은 상반된 특징을 보입니다. 영국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해나갔고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이 부드럽게 진행됐으며 정치 권력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됐습니다. 권력 분산과 법치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틀을 차근차근 확립해 나갔습니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기존의 정치 체제를 급격히 전복시키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제도적 안정성은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격동의 시기를 살게 된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과 공화주의 정신이 더욱 강해졌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급진적 변화를 겪으며 프랑스는 때로는 민주주의적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때로는 오히려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불안정성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면서도 민주주의 확립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두 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하게 된 과정은 매우 상이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근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모델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두 나라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결국 정치의 안정성과 제도적 유연성, 시민의 참여 방식에 따라 사회의 발전 방향과 사회 문화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론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다른 정치적 길을 걸어갔고 그 다른 길에 따라 사회 전체의 행보도 달라졌습니다. 두 국가의 오늘날의 모습도 이런 행보가 이뤄낸 결과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사회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 제도의 역사적 변화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