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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학생과 학자의 삶(영국과 프랑스)

by mynote7713 2025. 3. 24.

유럽의 교육과 학문은 사회적 계층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예외가 아닙니다. 18~19세기는 두 나라 모두 격변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본격화 됐고,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사건을 겪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각각 다른 교육 환경과 학문의 지향점이 설정됐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의 교육 방식과 학자들의 연구 환경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이 글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생들 및 학자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학생 이미지입니다.

1. 영국의 학생들: 산업혁명과 교육의 변화

18~19세기 무렵의 영국에선 사회적 계층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이 크게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이나 귀족의 자재들은 사립학교에 다니거나 가정교사에게 배웠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남학생들에겐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 진학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런 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는 과목들은 주로 신학, 철학, 고전 문학 등이었는데 학문 탐구보다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더 의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류층 학생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학문을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중하위층 학생들은 학문 탐구보다는 조기 취업을 위한 실용적 기술 습득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상류층처럼 학문 탐구의 여유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마침 시기적으로도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과학, 공학, 경제학 같은 실용적 학문이 중요해졌고 공립학교와 기술학교가 증가했기 때문에 중하위층의 교육 수요를 잘 채워줬습니다. 1870년 초등교육법이 제정되면서 모든 어린이가 기초 교육을 받을 법적 토대도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이 되면 노동자 계층의 교육 기회가 크게 늘어납니다. 남성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던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도 이 무렵에 와서야 조금씩 열리게 됩니다.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여성도 대학에 입학할 길이 생긴 것입니다.

2. 프랑스의 학생들: 혁명 이후 교육 개혁과 국가 주도의 교육 제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1789~1799) 전후로 교육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혁명 이전에는 주로 교회에 의한 교육이 이뤄졌고 대학에 가는 것은 오직 소수의 엘리트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을 계기로 국가 주도의 교육이 이뤄지게 됩니다. 공교육 체제가 점차 확립됐으며 나폴레옹 시대에 들어서면 국립학교 시스템이 도입됩니다. 이는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교육 수혜자인 학생들도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 받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국가 주도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은 규율을 철저히 지키고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은 교육을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운영하려 했습니다. 학문적 자유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실용성을 요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학, 군사학, 행정학이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는 이후 프랑스 관료제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는 대학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나폴레옹이 1806제국 대학을 설립했는데 여기에서 국가 교육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이곳의 학자들은 연구보다는 교육과 국가 정책에 기여할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여성들은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육 받을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 동안 여성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여성 교육에 대한 논의도 일어났습니다. 이후 점차적으로 여성 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긴 했지만 19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3. 학자들의 삶: 영국의 자유 vs. 프랑스의 국가 중심

영국과 프랑스의 학문 연구 환경과 탐구 방식은 18~19세기 무렵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보입니다. 먼저 영국에서는 대학이 비교적 독립적 기관으로 운영되면서 학자들 역시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과 연계된 연구도 활발해졌고 덕분에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는 과학적 발견들도 많이 이뤄집니다. 즉 물리학, 화학, 공학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성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영국 학자들은 왕립학회 같은 학술 단체에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다른 학자들과 교류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학문 연구를 국가가 주도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학자들은 국가 정책이나 군사 전략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연구 기관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고 여기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학문적 자유는 상대적으로 제한됐습니다.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학문적으로 매우 권위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국가 중심적으로 학문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개인적 연구의 자유는 영국보다 적은 편이었습니다. 비교하자면 영국은 보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제공했고 이것이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국가 정책과 관련된 분야로 연구를 제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학문적 자유보다는 실용성과 국가의 필요가 우선시됐습니다.

결론

위와 같이 영국과 프랑스는 18~19세기 무렵 상당히 다른 교육 및 연구 환경을 제공합니다. 영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면 프랑스는 국가 주도하에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졌습니다. 이런 차이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쳐서 현재의 교육 제도와 학문 연구 방식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