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시대는 유럽 여러 국가들이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변화의 파고가 큰 시기였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 시기 자국의 사회 문화 정서에 맞는 고유의 연애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파리와 런던에서의 연애 방식 차이를 살펴보면서 당시 귀족과 중산층의 연애가 어떠했는지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랑: 연애의 감정과 철학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사랑이란 감정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조명했습니다. 먼저 프랑스 파리에서는 사랑이 하나의 예술이라 여겨졌고 이와 발맞춰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연애가 개인의 열정과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는 중요 통로로 받아들여졌고 로맨스 문학과 연극이 향유됐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의 연애는 사랑 자체의 순수함, 열정 등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적 성향을 띠었습니다. 꼭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사랑 그 자체가 고귀한 감정이라고 인식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때로는 금기와 사회적 규범을 넘나드는 대담한 연애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영국 런던에서는 사랑을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당시 영국 귀족 사회는 결혼이 가문 간의 동맹을 위한 중요 수단이었기 때문에 연애를 단지 결혼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물론 연애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연애의 의미는 결혼 전 단계로서의 의미가 강조됐습니다. 게다가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당시 사회 규범상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프랑스에 비하면 연애가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파리의 연애를 열정적인 연애로, 런던의 연애는 신중하고 전략적인 연애로 평할 수 있겠습니다.
예절: 연애에서의 규범과 금기
런던과 파리 모두에서 연애와 관련된 예절을 중시했지만 두 나라의 연애 예절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파리를 먼저 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연애편지뿐 아니라 은밀한 만남이 흔했고, 여성도 어느 정도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이 퍼져나가면서 연인 간에도 상호 존중과 평등한 관계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교계에선 연애가 하나의 지적 교류로 받아들여지면서 철학과 문학을 함께 논할 수 있는 여성은 더욱 매력적인 여성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런던의 연애 예절은 훨씬 엄격했습니다. 사교 모임에서 남녀가 만날 때에도 항상 보호자나 중간자의 감시 아래 있어야 했고 여성의 경우엔 특히 감정 표현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매우 보수적이고 계급 중심적인 당시 사교계에선 여성의 호감 표현이 때론 본인의 명예와 가문의 평판을 떨어트릴 수 있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먼저 연애편지를 보내면 남성을 유혹하는 가볍고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라는 소문이 퍼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애에서의 금기는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더 엄격하게 적용됐으며 연애 과정 역시 철저히 정해진 틀 안에서만 허용됐습니다.
접근법: 연애의 시작과 진행 방식
연애를 시작하는 방식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은 달랐습니다. 먼저 파리를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만남이 많은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살롱입니다. 살롱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교류하며 담론을 나눴는데 이런 교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감성적인 자극이 핵심 요소였습니다. 즉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성을 표현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상대에 대한 끌림이나 떨리는 감정 같은 것이 연애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연애 과정 중에는 지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시, 수필 등을 써서 상대에게 주거나 편지를 교환하는 등의 일이 잦게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런던에서는 이런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중매나 가족을 통한 소개가 일반적인 만남의 방법이었습니다. 연애의 시작도 직접적인 고백이나 감정 표현 없이 매우 조심스럽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예를 들면 꽃을 보낼 때 꽃의 색상이나 종류에 의미를 담아 보내거나, 무도회에서 춤을 신청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애의 시작도 공식적인 행사나 무도회에서의 첫 만남 이후 상대의 배경, 가문 등을 면밀히 평가한 뒤에야 비로소 진지하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결론
18~19세기 파리와 런던의 연애문화를 비교해 보면 파리는 감정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반면, 런던은 질서와 명예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비교를 통해 연애라는 개인적 행위에도 당시의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