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겪으며 대량 생산된 물품을 비싸게 팔고 원료를 값싸게 사 올 식민지 경쟁으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왕위 계승 문제를 겪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전쟁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군사적 패권을 놓고 여러 전장에서 맞붙었으며, 각각의 전략과 군사체계는 현재도 연구될 정도로 독창적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해군, 육군 편제, 전략체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해군의 힘: 제해권 장악한 영국 해군 vs. 바다를 빼앗긴 프랑스 해군
영국은 18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준 것은 강력한 해군력이었습니다. 영국의 함대는 대형 전열함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100문 이상의 대포를 탑재한 전함이 주력 무기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제해권 장악 전략을 펼치며 적국의 해상 무역을 봉쇄하고 해양 경로를 통제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유로운 식민지 교역과 군수 물자 보급이 이뤄졌습니다. 바다에 익숙한 섬나라답게 해전 경험이 풍부한 덕분에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상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며 제해권을 유지했습니다.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해상 무역과 식민지 경쟁 등에서 계속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해군의 중요성도 점점 증가했습니다. 더 높은 수준의 실전 경험, 항해 능력, 지휘력을 가진 해군 장교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필요 때문에 영국은 해군 인력 양성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해군 학교를 통해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점차 훈련과 승진 체계도 체계적으로 정립해 나갔습니다. 이웃 나라인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프랑스는 육군 중심의 군사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영국의 해군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육군 조직과 편제: 계급 중심 프랑스 vs 계약 중심 영국
18세기에 프랑스와 영국은 육군 편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먼저 프랑스 육군은 중앙 집권적인 지위 구조를 갖췄고 병과별로 전문화가 이뤄졌습니다. 즉 보병, 기병, 포병 등의 병종을 명확히 구분했고, 각 병종을 군사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귀족 장교들이 지휘했습니다. 특히 포병 분야는 기술적으로 상당한 진보를 이뤄 유럽의 모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휘 체계가 귀족 중심으로 운영됐다는 점은 문제가 됐습니다. 고위 장교의 대부분이 혈통과 신분에 따라 임명됐기 때문에 능력이 부족한 자가 지휘관이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는 실전에서 유연하게 전술 운용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반면에 영국은 육군 병사들을 계약으로 고용했고 이런 모집 체계를 유지하여 병사들의 직업 군인화를 촉진했습니다. 장교의 임관은 프랑스보다는 실전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물론 귀족 중심의 군대 운영 철학이 반영되어 일정 부분 ‘커미션 제도’를 통해 돈을 주고 장교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병과 간의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육군의 기동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이런 영국 육군의 약점은 병력 수가 제한됐다는 점입니다. 대규모 병력 운영이 어려웠으며 그만큼 유럽 대륙 전쟁에는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힘들었습니다.
군사 전략체계: 대륙전 중심 프랑스 vs 해양 봉쇄 중심 영국
영국과 프랑스는 18세기에 군사 전략적으로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 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국경을 방어함과 동시에 영토를 확장하고 동맹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지상군을 운영하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즉 방대한 육군을 통해 정복을 꾀하며 동시에 자국 방어를 도모한 것입니다. 이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과의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영국은 유럽 대륙보다 전 세계 패권 확보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강력한 해군을 중심으로 봉쇄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봉쇄 전략이란 적국의 항구와 해안선을 해군으로 차단해서 적의 함대, 상선, 보급선이 바다로 나오는 걸 막는 해상 전략이었습니다. 이는 경제적 고립과 군사적 고립을 동시에 노린 매우 강력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렇게 적국의 해상 공급선을 차단하고, 필요한 경우 해상에서 기습적인 상륙 작전을 펼치는 방식은 영국 특유의 전략이었습니다. 이는 7년 전쟁,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프랑스는 대륙에서 자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통적인 육군 중심 전략을 펼쳤고, 영국은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해군 중심 전략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 체계는 단순한 무력 수준을 넘어 국가 운영 철학과 전략적 목표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였습니다. 프랑스는 대륙 중심의 방어와 확장을 지향한 반면, 영국은 해양 패권과 경제적 봉쇄에 집중했습니다. 이 차이는 오늘날에도 두 나라의 군사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