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는 유럽 사회가 종교, 계급,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장례문화를 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선 종교적 차이와 사회 계층 구조,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장례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공회 중심의 영국 장례문화
영국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분리돼 나온 성공회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이후로 성공회의 영향으로 개신교적 절제와 소박함이 반영된 장례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18세기에 이르면 장례의식에서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분위기와 격식이 중시됐습니다. 장례식은 대체로 교회에서 이뤄졌으며 그 절차에 성경 낭독과 찬송가, 고인의 생전 행적에 대한 간단한 회고가 포함됐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고인을 기억하며 신의 품으로 보낸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분 계층 간의 장례문화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귀족과 상류층의 장례식은 엄숙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됐는데 검은색 복장과 검은 천으로 감싼 관, 엄숙한 행렬 등이 특징이었습니다. 무덤은 교회 주변 묘지에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지위를 반영한 비석과 묘비문이 세워졌습니다. 묘지는 화려하지 않았고 구조도 간결한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반면 하층민의 경우엔 간단한 의식과 공동묘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례는 신앙생활의 연장선으로 여겨졌고 지나친 감정 표현은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영국에서는 장례비용과 절차가 점차 표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장의업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공동묘지의 수요가 급증했는데 위생 문제로 도시 외곽에 대형 묘지가 조성됐습니다.
가톨릭 전통과 사회계층이 반영된 프랑스 장례문화
프랑스의 장례문화는 18세기까지 로마 가톨릭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장례식은 성당에서 미사와 함께 진행됐는데 여기서 고인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기도와 의식이 중시됐습니다. 장례 미사는 필수로 여겨졌습니다. 영국의 절제된 의식과는 대비되게 향과 성수, 십자가 행렬 등 시각적 요소가 강조된 의식이 특징이었습니다. 신분 계층 간의 장례문화 차이는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귀족 계층은 장례식에서 화려함을 추구했는데 이 경향성은 루이 14세 이후 귀족 문화의 절정기에 극에 달합니다. 이때는 매우 웅장한 장례의식이 거행됐습니다. 금장식으로 꾸며진 관을 실은 마차로 시내를 행진하며 장례를 알리는 형식이 일반화될 정도였습니다. 장례 복장 역시 격식을 갖춘 검은색 복장에 레이스나 문장 등의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그러나 하층민은 교구 신부에 의해 간단한 의식만 거친 후 매장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묘비조차 없이 공동묘지에 묻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장례의식에서 사회적 위계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 전까지 계급 간 문화 차이를 벌리는 주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계급 간 격차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종교 중심에서 점차 시민 중심으로 장례가 전환됐고 공공 묘지 제도의 도입과 함께 죽음에 대한 인식도 점차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와 사회적 배경이 만든 장례문화의 양상 차이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장례문화는 그 나라의 종교적 전통, 사회구조 및 정치 상황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먼저 종교적 전통에 따른 차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영국은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절제된 장례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성공회에서는 사치스러운 장례가 경건하지 못하다 여겼고 죽음 이후의 구원은 개인의 신앙과 행위에 달렸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프랑스는 가톨릭의 전통에 따라 화려하고 상징적인 장례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죽음 뒤에 신의 은총과 교회의 중재를 통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사, 성수, 성인의 상징 등이 강조됐고 장례의식 역시 화려하고 상징적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다음으로 정치 상황과 사회구조 영향에 따른 장례문화 차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영국은 17세기 명예혁명 이후 18세기까지 비교적 안정된 정치 체제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도 점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덕분에 장례 절차도 사회 제도권 안으로 편입돼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표준화와 제도화가 이뤄졌습니다. 귀족이나 평민이나 모두 유사한 형식의 장례식을 치르는 경향이 점차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프랑스의 경우 18세기 후반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절대왕정 체제가 유지되면서 장례문화에서도 신분에 따른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18세기 동안 영국이 귀족과 평민 간 장례 양식 격차를 좁혀나간 반면 프랑스에선 프랑스 혁명 전까지 크게 벌어진 상태를 유지한 것입니다. 이처럼 장례문화도 여타 문화들처럼 한 사회의 다른 요인들과 긴밀하게 얽혀 발전합니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장례문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종교와 내세관, 정치 사회적 변화, 계층 간 권력 구조 등 여러 요인의 총체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오늘날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장례문화는 그 뿌리를 그대로 이어받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