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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vs 프랑스군: 병과별 차이 (보병, 해군, 군사조직)

by mynote7713 2025. 4. 3.

영국과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한 관계로 오랜 역사 동안 끊임없이 엮였습니다. 18세기는 유럽 전역에서 군사력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습니다. 전통적 경쟁자였던 이 두 나라도 여기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각 나라는 자국의 여러 여건에 따라 군사 체계와 병과 별로 차이가 나는 운용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보병, 해군, 군사조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8세기 영국 해병(좌)과 프랑스 보병(우)의 이미지입니다.

보병: 전열 중심 프랑스 vs 기동성 중시 영국

프랑스군의 보병은 전통적으로 전열 보병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전열을 한자로 직역하면 싸우는 줄을 의미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열 보병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줄지어 싸우는 보병을 말합니다. 보통은 두세 줄로 늘어서서 앞줄에선 발포하고 뒷줄은 장전하거나 교대하면서 싸웁니다. 이 방식은 당시 머스킷 소총의 낮은 명중률과 느린 재장전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이때의 무기는 조준 사격보다 집단 발포로 화력을 집중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잘 훈련된 보병은 전열을 유지한 채 빠르게 장전하고 일제 사격 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또한 포병과 협조하며 대규모 교전에서 우수한 전투력을 보였습니다. 프랑스군은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 보병인 경보병도 도입해 전열 보병의 무겁고 단순한 움직임에 유연성을 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육군의 중심은 전열 전술에 있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국은 기동성 중심의 유연한 전술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영국은 경보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1756년 북미 식민지에서 7년 전쟁을 치르며 밀림이나 산악지대 같은 환경에서 전열 보병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경보병은 기존의 전열 보병 연대에서 신체가 건강하고 사격에 뛰어난 병사들을 선발해서 구성했습니다. 이들은 소규모 부대로 움직이면서 밀집 대형을 유지하지 않고 흩어져서 자유롭게 사격했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은폐와 기습에 능했습니다. 영국 보병에 전열 보병이 존재하긴 했지만 이보다는 경보병 소대 단위의 자율적 행동과 전투에서의 유연성이 더 강조됐습니다.

해군: 제해권의 제왕 영국 vs 제약 많은 프랑스 해군

18세기 해군 병과에서는 단연코 영국이 가장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영국 해군은 방대한 전열함 전력을 보유했으며 해군 전투 교리를 표준화하고 장교급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여러 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군함 건조 기술, 해상 항법, 포격 정확도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강력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해상 보급 체계를 확립하고 식민지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영국은 전 세계 해역을 누비는 장기 작전도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는 식민지 확보와 국제무역에 있어 큰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반면 프랑스 해군은 국가의 군사 전략 자체가 육군 중심이었기 때문에 늘 후순위로 밀려났습니다. 기술력 면에선 뒤처지지 않는 뛰어난 조선술을 보유했지만 정치적 지원과 안정적인 예산 부족에 만성적으로 시달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함대 규모나 장교 숙련도, 항해 능력에서 영국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여러 차례 해군 개혁을 시도했으나, 왕정의 재정 위기라든지 국가의 대륙 전쟁 우선 전략 등으로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군사조직: 귀족 중심 프랑스 vs 실용 중심 영국

군사 조직 측면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대비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먼저 프랑스의 군사 조직 체계를 보면 귀족 사회의 계급 문화가 강하게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에서 고위 직책은 대부분 명문 가문 출신의 장교들이 맡았고 장교 체계 거의 전체가 귀족 출신들로 구성됐습니다. 한마디로 프랑스군은 계급 및 신분 중심의 지휘 체계를 갖췄습니다. 물론 군사 아카데미를 통해 전문성도 확보하려 했지만, 많은 경우 실력보다 혈통이 우선시되곤 했습니다. 반면에 영국군은 보다 실전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즉 병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전투에서 싸워본 경험 자체가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였고 조직 내 신뢰와 인정을 얻을 조건이었습니다. 해군의 경우 승진은 이론 시험보다 실무 경험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했고, 아무리 귀족 가문 출신이라도 실전 경험이 없으면 장교로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장교 후보생인 해군 견습생들은 이론 교육보다는 수년간 함선에서 직접 항해하고 전투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무능한 장교가 지휘하면 배 한 척의 모두가 죽는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국군의 지휘관 계층이 현장 적응력이 우수한 인력들로 채워지게 했고 현장 중심으로 개선된 전술을 펼칠 수 있게 했습니다.

결론

섬나라 국가인 영국은 일찍부터 자국을 둘러싼 해양을 보며 경험과 능력 중심의 해군을 육성한 반면 대륙의 일부였던 프랑스는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 육군을 중점적으로 육성했습니다. 프랑스군의 군사 조직에는 당시의 신분과 계급 문화가 녹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두 나라가 병과별로 다른 발전 양상을 띠는 것은 각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및 시대 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