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8~19세기에 산업혁명에 따른 도시화와 식재료 유통 확대 등으로 식생활에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자의 문화를 기반으로 고유의 식생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이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두 나라 요리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18~19세기 식생활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프랑스 식문화의 예술성과 다양성
프랑스는 18세기 후반부터 ‘미식의 나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식문화가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식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교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미적 표현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코스 요리 개념이 이 시기에 확립됩니다. 식사는 전채, 수프, 메인 요리, 디저트 순서로 구성됐고, 각 요리는 정교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뒤 섬세한 플레이팅까지 거쳐서 나왔습니다. 당시 프랑스 요리는 지방 특색이 잘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는 와인이, 노르망디는 크림 소스가, 프로방스는 허브가 주방에서 많이 사용됐습니다. 지역 식재료와 향신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또 다른 프랑스 요리의 특징은 소스가 매우 중요시 됐다는 것입니다. 베샤멜, 에스파뇰, 알망드와 같이 ‘어머니 소스’ 또는 ‘클래식 소스’라 불리는 전통적 소스들이 이 시기에 정형화되거나 개발됐습니다. 19세기로 넘어오면 ‘앙투안 카렘’이라는 유명한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요리를 단순한 조리법의 모음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철학으로 보았고 유명한 ‘고전 요리’ 체계를 정립했습니다. 이 체계에서 요리의 계량화와 분류를 시도한 것도 그의 업적입니다. 그의 ‘고전 요리’ 체계는 다른 유럽 국가의 요리사들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식사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프랑스에서는 식사 공간 역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응접실과 식당은 분리되어 있고, 식사할 때 테이블 매너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테이블엔 장식된 식기, 와인잔, 촛대 등을 사용하여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실용적 식문화와 중산층의 부상
영국 요리는 프랑스 요리처럼 예술 지향적이진 않습니다.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도시 중산층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그들의 가정 중심 식문화가 활성화됐습니다. 온 가족이 일요일에 함께 구워 먹는 고기인 ‘선데이 로스트’나 가정에서 정해진 시간에 차와 함께 가벼운 음식이나 디저트를 곁들이는 ‘티타임’같은 일상 속 식사 관행이 이 시기에 정착됐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영국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이 당시 영국의 아침 식사는 영양을 고려해 고기, 채소, 계란, 빵 등이 한 접시에 다 나오는 매우 포만감 있는 식사가 주로 나왔습니다. 이 한 접시 메뉴를 ‘풀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점심 식사는 간단히 이뤄졌고 저녁 식사는 가족 중심의 푸짐한 식사로 이뤄졌습니다. 이 시기 영국의 대표적 식재료에는 감자, 소고기, 양고기, 생선, 밀가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덕분에 통조림, 제분기, 제과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보다 다양한 식재료가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영국에서 차 문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홍차는 18세기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샌드위치, 스콘, 쿠키 등 다양한 간식 문화도 따라서 발전했습니다. 차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사교의 중심으로 기능했고, 귀족 여성들의 ‘애프터눈 티’는 하나의 사교 행사가 됐습니다. 19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 가정용 조리 도구가 발전하고 식사 예절이 보편화 되면서 중산층 가정에서도 정갈한 식탁을 차리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식문화 비교
앞의 설명을 토대로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식문화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공통적으로 두 나라 모두 이 시기에 식문화에 큰 변화를 겪습니다. 두 나라 모두 도시화, 산업화, 국제 무역 확대 등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은 다양한 식재료가 널리 보급되는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주방 기술 진보에도 일조하여 더욱 다양한 조리법들이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나라 모두 식사를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연회나 만찬을 통해 사교 관계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려 했고, 영국인들은 티타임을 중심으로 이웃이나 친척과의 유대감을 유지했습니다. 즉 두 나라 모두 식사를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소통과 교류의 매개체로 인지했습니다. 두 나라 식문화의 차이점은 각 식문화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선 귀족 문화가 식문화에도 스며들었기 때문에 식사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구성됐습니다. 예술적 감성과 미적 추구가 프랑스의 식문화가 지향하는 방향이었습니다. 반면에 영국은 중산층 가정 중심의 문화를 토대로 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실용적인 식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영양적 균형이나 규칙적인 식습관 등이 강조됐고 가족 중심의 식사가 보편화됐습니다. 이런 차이를 보인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식문화는 이후 주변 국가들에도 각기 다른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는 고급 레스토랑과 요리 학교 발전으로 유럽 전역의 요리 트렌드를 선도했고, 영국은 실용적 식문화를 전파하면서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안정적인 식사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결론
요약하자면 18~19세기에 프랑스는 예술적 감각과 귀족 문화가 반영된 정교한 미식 문화를 형성했고, 영국은 실용성과 일상의 편안함이 녹아있는 중산층 식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처럼 식문화는 단순한 조리법과 식사 예절의 조합을 넘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