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18~19세기는 중산층이 부상하는 시기 였습니다. 이전의 귀족 중심 사회에서 시민 계층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오는 격동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유럽 사교계의 꽃은 단연 무도회일 것입니다.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주요국에서 무도회는 단순한 친교의 장이아니었습니다. 무도회는 오히려 정치와 문화, 혼인 전략 등의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는 중요한 사교 행사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근대 유럽 무도회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역사적 배경, 형식, 문화와 의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무도회의 기원과 발전
무도회는 중세 말부터 이미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며 중세의 무도회와는 형태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에선 루이 14세의 궁정 문화에서 비롯된 정형무를 무도회에서 주로 추게 됐습니다. 정형무는 일정한 규칙과 절차, 자세가 정해져 있는 춤입니다. 이런 정형무는 궁정무에서 비롯된 만큼 왕의 권위와 질서를 표현하는 절도 있고 장식적인 동작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며 무도회는 궁정 중심에서 상류 시민계층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에서도 무도회는 먼저 왕실과 귀족 계층으로부터 점차 중산층으로 퍼졌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부터 1901년 사이를 일컫는데 이 시기가 영국 무도회의 전성기였습니다. 이 때는 매년 4~7월의 소위 ‘런던 시즌’에 귀족과 상류층이 대규모 무도회를 활발하게 열었고, 귀족가의 딸들이 사회에 데뷔하는 ‘데뷔탕트 무도회’도 성행했습니다. 무도회에선 정해진 형식과 규범이 있었습니다. 참석자는 초대장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였고, 의상, 춤, 대화, 파트너 교체까지 모든 것이 정해진 예절대로 진행됐습니다. 이런 예절 절차는 사회적 규범과 계층의 위계 질서를 재확인하고 공고히 다지는 기능도 했습니다.
무도회의 구성과 대표 춤
무도회의 시작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자정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도 죽 이어졌습니다. 구성은 오프닝 댄스, 파트너 소개, 본격적인 춤 시간, 간식 및 휴식, 마지막 왈츠 순서로 이뤄졌습니다. 무도회의 대표적인 춤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미뉴에트는 프랑스 궁정에서 유래된 춤인데 느리고 우아합니다. 무도회 초기에 자주 췄던 춤이기도 합니다. 둘째, 카드릴은 네 사람씩 팀을 이뤄 추는 춤입니다. 여럿이 추는 만큼 협동과 구성미가 강조된 춤입니다. 셋째, 유럽 전역의 민속 춤에서 유래되어 무도회에 맞게 변형된 부류의 춤들이 있습니다. 볼레로, 마주르카, 폴카 등이 이에 속합니다. 넷째, 왈츠는 오스트리아에서 유래된 춤으로 3박의 회전 춤입니다. 남녀가 밀착해서 추는 형식이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겨졌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무도회의 꽃으로 자리 잡는 춤입니다. 무도회에서 이런 춤들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교류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특정 이성과 연속하여 춤을 추는 것은 결혼 전 단계에 은밀히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춤의 파트너를 통해 그 사람의 신분, 교양,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기도 했습니다. 무도회장은 주로 거대한 연회실이나 별도로 마련된 ‘볼룸’이 사용됐으며, 춤을 위해 샹들리에 조명과 장식, 생음악이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무도회를 둘러싼 문화와 의례
무도회는 겉보기엔 단순히 화려한 사교와 오락의 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서 권력과 계급 질서를 시각화하고 인적 네트워킹을 형성하며 신분을 드러내는 복합적 문화의 공간이었습니다. 먼저 복장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복장 규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여성은 계절과 행사 시간에 맞는 드레스를 입어야 했고 장갑과 부채는 필수였습니다. 특히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데뷔탕트 여성은 '순결함'과 '가문의 명예'를 상징했습니다. 남성 역시 격식 있는 복장을 갖춰야 했습니다. 보통 테일코트, 조끼, 셔츠, 실크 해트, 장갑을 모두 갖춰 입었습니다. 단정한 태도와 매너 역시 필수였습니다. 다음으로 대화 주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무도회에서 대화 주제는 시기와 국가, 무도회의 성격에 따라 달라졌지만, 공통적으로 예술 취향, 사교적 센스, 정치적 암시 등이 많이 이야기 됐습니다. 특히 예술, 문학, 음악과 같이 ‘안전하고 세련된’ 주제가 선호됐습니다. 무난하면서 지적 수준을 과시할 수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은근한 암시나 돌려서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무도회는 단순한 개인들의 만남을 넘어 가문 간에 결혼으로 연을 맺거나 사업 파트너십을 형성하거나 정치적 동맹을 맺는 등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과 귀족들은 무도회를 자신들의 권위와 존재감을 유럽 귀족 사회에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결론
근대 유럽의 무도회는 이렇듯 당대 상류 사회 문화의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오락과 유흥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규범, 패션과 음악, 결혼과 사업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는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생활상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무도회를 들여다보는 것을 빼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